부산 기장 박태준 기념관, 포스코 신화를 만든 박태준의 삶과 철학

지난 여름 휴가 때 기장 임랑해수욕장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습니다.
예쁜 모래사장이 1km 넘게 이어진 해수옥장이 있는데, 부산의 해수욕장들 중에서 한적하고 낭만이 있는 해변으로 쳥가받는 곳입니다.

아울러 임랑마을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종합제철 건설을 이끌었던 청암 박태준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낸 곳으로 당시의 건축물과 나무를 최대한 살려 박태준 기념관이 있는 곳입니다.
박태준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가 평생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와 철학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며, 회랑 수정원이라는 정원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예전엔 박태준 생가라는 표지판만 있고 옆에 있는 임랑원이라는 스타벅스 카페 부지랑 함께 대나무 숲으로 막혀 있었던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박태준 기념관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박태준 생가였던 박태준 기념관은 기장에서도 북쪽에 있는 임랑마을에 자리하고 있고, 그 앞에는 임랑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임랑해수욕장은 부산출신 가수인 정훈희와 김태화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지내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저 역시 정훈희김태화 꽃밭에서라는 카페에 가고 싶었는데,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12:00~17:00까지만 운영하고 있어 들리지는 못했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관람시간은 09:00~18:00(입장마감은 17:30)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
입장료(관람료)는 무료,
주차장 역시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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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념관 3

박태준기념관은 그동안 출입금지구역으로 있다가 유족측이 생가 남쪽 정원을 기부하면서 2021년 12월에 임랑문화공원으로 개장했는데요.
박태준이 태어나 살았던 생가는 사유지로 그대로 있고, 생가 옆에 기념관을 조성한 것입니다.

즉, 단순히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장소에 세운 기념관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고향에 그의 삶의 흔적과 자연을 함께 담아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1,200여점의 유물이 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라고 합니다.

박태준은 누구인가?

박태준(1927~2011)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정치인으로, 포항제철(현 POSCO)을 설립해 세계적인 철강 기업으로 키워낸 ‘대한민국 철강왕’입니다.

군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포항제철 초대 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제철보국(철을 만들어 국가에 보은한다)’의 슬로건 아래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핵심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역임하며 정계에서도 활약했으며, 그의 결단력과 강직한 리더십은 한국 현대 산업사의 큰 족적으로 남아있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4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건축물 사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중정과 회랑이 눈에 들어옵니다.
전시관을 단순히 감상하는 곳이 아닌 천천히 걸으며 건축과 자연을 함께 감상하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박태준 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넓은 중정과 이를 감싸안은 둥근 회랑입니다.
어두어졌다가 회랑 벽면의 둥그런 창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면 밝아지는 것은 박태준의 굴곡진 생애와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박태준 기념관은 유명 건축가인 조병수가 설계를 맡았는데요.
바닷가 작은 임랑마을의 골목과 주변 나지막한 주택들의 스케일을 해치지 않도록 높고 위압적인 건물 대신 단층 구조의 정갈한 형태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기존 땅에 서 있던 오래된 고목(개잎갈나무, 곰솔 등) 2그루를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살려 건축의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터에 있던 기존 한옥 주택 3채의 목조 구조와 벽체를 보존, 리모델링하여 사무동, 세미나실 등으로 재활용했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5

회랑 중간에 있는 수정원

수정원은 기념관의 자연환경과 건축물이 만나는 핵심적인 공간으로, 기존의 보호수목과 박태준이 가꾸었던 나무를 중심으로 정원을 조성해 놓은 공간입니다.
한국 조경을 개척한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건물 안에서 정원을 바라볼 수도 있고 정원 주변을 직접 걸어볼 수도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나무와 꽃의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에 봄과 여름, 가을에 각각 방문해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7

원래 정원에 있던 곰솔을 그대로 살려 둔 것입니다.

박태준 기념관은 박태준을 상징하는 철을 활용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청암의 ‘제철보국’ 뜻을 기리기 위해 철을 사용한 기존 건물의 램핑과 파스텔톤의 알루미늄 표면재 등을 활용한 것입니다.

박태준 기념관 10

박태준 기념관 전시모습

박태준의 어린 시절부터 군인 시절, 그리고 제철소 건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사진과 문서, 유품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기획전 ‘쇳물은 멈추지 않는다’는 청암이 남긴 회고록과 자서전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철을 만들어 나라에 보답한다는 제철보국을 위해 희생한 숭고한 정신을 살표 볼 수 있네요.

박태준 기념관 13

청암 박태준 흉상

박태준은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1927년 부산 기장군 임랑리에서 태어난 그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차별 속에서 학창시절을 봉냈습니다.
1945년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에 입학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아리고개 전투와 형산강 전투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이때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 4개의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1954년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국방대학 교수와 국방부 인사과정을 거치며 1963년 육군소장으로 군을 떠났습니다.
1966년 대한국제제철차관단이 발족되어 위원장으로 임명된 박태준은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의 첫 출선과 함께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뿌리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철강산업 기반이 부족했지만, 박태준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철강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철소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1981년에 포항제철 회장이 되었고, 1981년부터 제 11대, 13~15대에 걸쳐 4선의 국회의원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2000년에 국무총리를 거져, 2011년 12월 사망했습니다.
그는 포항공과대학 설립을 지원했고, 14개의 유치원과 초중고교를 세우며 교육보국을 실천하기도 했습니다.

박태준이 받은 보국훈장, 산업훈장, 국민훈장
그리고 박태준이 입었던 작업복과 작업모 등

박태준 기념관 17

전시실을 나와 이어지는 복도를 따라 가면 임랑문화공원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막혀 잇지만 그 옆이 박태준의 생가가 이어져 있습니다.

박태준 기념관 앞에는 임랑원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바다 바로 앞에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와 수목, 넓은 잔디밭 정원을 갖추고 있던 부지가 있던 것을 스타벅스에서 매장을 오픈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함께 둘러보면 좋습니다.

정원이 있는 기장 임랑해수욕장 오션뷰 카페, 스타벅스 기장 임랑원점